컬럼 -미투 운동과 인권혁명

미투 운동은 체제 안에 잠복한 차별을 폭로하고 그 자체를 변혁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래서 미투 운동은 21세기형 인권혁명이다.

‘아주 작은 차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독일 페미니즘 잡지 <엠마>의 창간자 알리스 슈바르처가 여성 13명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유럽 68혁명의 사상적 진지 역할을 했던 프랑크푸르트학파. 그 중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 비판이론가의 아내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상적으로 남편으로부터 구타를 당해왔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오래전 이 책을 읽을 당시 나는 가정폭력을 ‘젠더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폭력의 관점’에서만 봤던 것 같다. 소통을 그리 역설하는 진보사상가가 제 아내조차 말로 설득을 못해?

68혁명 당시 파리에서 바리케이드를 쌓고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운동의 지도부 안에서 다반사로 성폭력이 일어났다. 이 문제를 놓고 “적들과 대치 중인 엄중한 마당에 ‘사소하고 개인적인’ 일을, 무엇보다 ‘운동의 대의를 훼손하는’ 그래서 ‘전선을 흩트리는’ 공론화를 꼭 해야겠냐?”며 은폐하고 묵살하려는 (남성)지도부에 항의하며 페미니즘 진영은 68운동 본류에서 이탈한다. 이 문제를 처음 알았을 때 역시 한심하게도, 안에서 서로 조율 좀 잘 하지! 누구 좋으라고 서로 싸워? 했다.

대한민국 새천년 벽두에 ‘여성100인위원회’(정확히는 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100인위원회)는 소위 운동권 내 성폭력 가해자 16명의 명단을 실명 공개하였다. 아마도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용어도 이때부터 쓰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난리가 났음은 물론이다. 이때도 나는 멍청하게도, 운동권도 다를 바 없네 하면서도 억울한 이가 있겠거니 했다.

최근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낱낱이 폭로한다. 남성들은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미투 운동의 표적은 남성이 아니다. 펜스 룰 따위의 대응은 바로 이 지점을 오인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표적은 남성중심적인 권력구조, 즉 기존의 차별적 권력관계이다. 성욕이 성기가 아닌 머리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성폭력은 성적 본능이 아닌 지배와 피지배라는 성적 위계에서 발생한다. 미투 운동은 일정한 재산(사회적 신분)을 가진 성년(나이)의 유럽(출신지역) 백인(인종) 남성(성)만을 시민으로 간주했던 존 로크 식의 차별을 이제는 철폐하라고 요구한다.

 

촛불시민운동이 헌정질서를 회복해 체제를 원상복구한 것이라면, 미투 운동은 체제 안에 잠복한 차별을 폭로하고 그 자체를 변혁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래서 미투 운동은 21세기형 인권혁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체제의 극복은 합법과 상식의 틀 내에서 얌전하게 실현된 적이 없다. 그럴 일이었으면 벌써 악습으로부터 벗어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생활습성으로 뼛속까지 스며든 기존 관행에 쐐기를 박는 일이니, 어쩌면 매우 불편하고 못마땅하며 고통스런 부작용까지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도매금에 매도되는 억울한 사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데는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게 이제껏 숨죽여 희생되어 온 다른 한편의 인간에 대한, 우리 모두가 취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출처>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_id=201803261704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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