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다시 4·16, 그리고 어버이날

이른 새벽, 잠에서 깼습니다. 언제부턴가 부쩍 잠자리가 편치 않아졌습니다. 불면에 시달리는가 하면,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라치면 거의 어김없이 꿈을 꿉니다. 무언가에 쫓기거나 길을 헤매는 꿈입니다. 가위 눌려 소리를 지르다 깨는 경우도 잦습니다. 4년 전 ‘그 날’ 이후 나타난 변화입니다. 20대 들어서자마자 겪은 광주의 충격 이래 제 삶에 드리운 또 하나의 음영인 셈입니다.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잠이 돌아오질 않아 하릴없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데, 메시지가 옵니다. 떨어져 지내는 아들녀석이 곧 어버이날이 다가온다고 보내온 거네요. 평소 통화조차 쉽지 않았는데 웬일로 이번에는 장문의 편지입니다.

“한국은 어버이날이 멀지 않았네. 가끔 동영상 보다보니 ‘부모님한테 꼭 했어야 할 말이 있는데, 못했던 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 이런 말들이 자주 나오더라고.” 아들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어 “부모님처럼은 안 돼야지, 하는 애들을 주변에서 많아 봤는데, 내 엄마와 아빠는 항상 나의 롤모델이었고 먼 이야기겠지만, 내 자식에게도 꼭 아빠 같은 아빠가 되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라며 “계정 비밀번호 찾기용 질문은 항상 ‘존경하는 사람은?’이었고, 답변은 ‘아빠/아버지’였다”고 고백합니다. 편지는 “사랑하고 항상 보고 싶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하면서 끝납니다.

 

어찌 보면 의례적인 편지가 이날 따라 기시감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동시에 그동안 눌려 있던 감정이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내 아이가 지금 세월호에 갇힌 채, 제 아비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편지인 양 느껴졌습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미안함, 죄책감, 무력감, 부끄러움과 애틋함, 그리움, 사랑스러움…. 특정할 수 없는 감정들이 헝클어진 채 한꺼번에 몰려 나왔습니다. 한밤중 난데 없는 흐느낌에 아내가 놀라 깨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어버이날을 맞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카네이션을 달고 이날만큼은 웃음을 나누시겠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단 하루치의 행복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웃이 있음을 기억합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세월호 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어버이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그 비통함을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요.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통점(痛點)이 되어 남겨졌습니다.

 

우리는 4년 전 배 안에서 우리 자식들이 보내온 마지막 편지를 아직 받질 못했습니다. 손가락이 짓물러지도록 애타게 보내려 한 문자편지 말입니다. 그 편지는 틀림없이 “부모님한테 꼭 해야 할 말이 있는데 못했던 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로 시작해 “엄마와 아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보고 싶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하면서 맺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더라도, 돌아오는 어버이날엔 아이들이 보내온 천상의 편지와 천상의 카네이션이 유가족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어버이 가슴에 아로새겨지리라 믿습니다. 다시 4·16이고 다시 어버이날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출처>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24&art_id=20180430143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