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거북이 시스터즈’가 세상에 낸 균열
[정동칼럼]‘거북이 시스터즈’가 세상에 낸 균열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영희씨가 바깥세상으로 처음 나간 것은 25살 때였다. 그는 혼자서는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1급 중증 지체 장애여성이다. 집에서 한글을 배워 고전·문학 전집류를 깡그리 읽었고, 읽다보니 생각과 감정이 흘러넘쳐 글을 꾸준히 썼다고 한다. 그녀의 세상과의 소통수단은 라디오와 편지였다. 세상의 첫 나들이도 편지가 맺어준 인연 덕분. 영희씨는 부산의 한 장애여성 공동체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 그곳의 언니 두 명이 강원도 동해에 살던 영희씨를 불쑥 찾아왔다.
“작년에 핀 개나리를 올해 보고, 내년에도 또 보고…. 언제까지 집안에 갇혀 살아야 하나.” 영희씨의 막막한 심정에 공감한 언니들이 다른 세상을 경험토록 하겠다며 영희씨에게 손을 내민 것이었다. 동해에서 부산까지 버스로만 7시간 거리. 자신들도 경증 장애인인 두 언니가 영희씨를 버스·택시에 업어 태우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공동체에서 1주일을 지내며 영희씨는 함께 살기 위해 알아야 할 일상의 돌봄과 책임을 진하게 배웠다. 그러곤 버스에 태워준 뒤 “혼자 가라”는 언니들에게 등 떠밀려 두려우면서도 짜릿한 나 홀로 귀향을 감행한다. 급물살과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세상으로 연결된 다리를 한번 건너본 셈이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1997년, 영희씨는 독립했다. 36살 때였다. 어머니의 뇌졸중이 결정적 계기였다. 장애인단체에서 만나 생각을 나누던 중증 장애여성 두 명이 함께 살기로 했다. 집을 구하는 일부터 시작해 쉬운 일이 단 하나라도 있었으랴. 그럼에도 3명의 ‘거북이 시스터즈’는 서울 고덕동에 터를 잡고 삶의 존재를 찾아가는 느리고 고된 행로를 시작한다.
이쯤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식의 서사를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거북이 시스터즈는 사람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고, 우월·열등함으로 구별하고, 이를 통해 차별과 비하와 혐오를 정당화하는 기존의 정의에 도전해갔다. 다른 장애·비장애 여성들이 합류해 모두 아홉 명이 이틀이 멀다하고 모였다. 고덕동은 아지트가 됐다. 여성학을 공부하고 토론하고 울고 웃으면서 세상이 외면하던 자신들의 몸을 관찰하고 탐구하며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 급기야 이들은 이듬해인 1998년 ‘장애여성공감’이라는 단체를 결성한다. “워낙 가진 것이 없어 자유로웠고 그 덕분에 기발하고 창조적인 생각들이 분출하자 스스로의 눈부신 능력들에 놀라워하다 이를 다른 장애여성과 나누고 함께하기 위해서”였단다.
지난 20년간 ‘장애여성공감’은 거북이걸음으로 쉬지 않고 나아가며 많은 일들을 해냈다. 잡지 ‘공감’을 발간해 주변의 장애여성들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섣불리 말하지 않던 장애여성의 몸과 정체성, 독립, 성적 억압과 욕망, 성폭력 피해 등에 대한 글들은 이 땅에 장애여성의 존재와 목소리를 알리는 북소리였다. 이후 몰려든 장애여성과 캠프를 열고 난장을 벌였으며, 연극팀 ‘춤추는 허리’와 발달장애여성 일곱 명으로 구성된 노래팀 ‘일곱빛깔 무지개’도 만들었다.
발달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연극을 상상해 보시라. 비장애인들 틈에 끼어 ‘정상’의 몸짓을 연기할 것이라 생각하면 이 또한 오산이다. 누워서 하든 휠체어에 앉아서 하든, ‘춤추는 허리’는 끼와 전문성을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유쾌하게 발휘했다. 허리를 돌리며 꿈을 키웠고, 동시에 소위 ‘정상성’에 기댄 기존의 미적 기준을 휘저었다. 그렇게 세상에 균열을 내는 과감한 도전을 해나갔다.
최근 ‘장애여성공감’이 개최한 20주년 행사를 보면서 의존과 독립, 연대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본다. 세상은 흔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자립’의 삶을 강조한다.
영희씨는 독립 후 세월의 급물살 속에서도 느리게 나아가고 그나마 균형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매번 사람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동해까지 찾아왔던 두 언니, 여성학 공부를 함께했던 비장애 페미니스트 등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장애·비장애 여부를 떠나 여러 방식으로 서로에게 의존하고 지지대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비장애인이라 해도 온전히 주변사람에 기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일본 도쿄대 야스토미 아유무 교수는 “자립이란 의존하는 것”이라 했다. 모든 이들이 타인에게 의존해야만 비로소 자립할 수 있으며 자유롭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도움이 시혜와 굴욕이 되지 않으려면 도움을 받는 사람의 의사가 존중되고,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나? 거북이걸음으로 세상을 바꿔오고, 현재는 각종 인권단체 대표와 활동가로 활약 중인 ‘장애여성공감’의 박김영희 전 대표가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032039025&code=9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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